로마의 성자 '발렌타인'
link  엄요안나   2021-05-24
카톨릭 성인 반열에 올린 순교자는 1584년 에 오른분만도 4천5백명에 이른다. 성인에게는
각기 그 성인의 축일이 정해져 있기로 이탈리아 달력에는 성인의 축일 아닌 날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우리나라에도 올해에 1백 3명의 성인이 탄생되면 '성김대건의 날' 등등 사나흘에 하루꼴로 성인의 축일이
생길 판이다.

오늘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는 바로 로마의 성승 발렌타인이 순교한 날에 불과하다. 한데 구미사회에서는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신나는 날이 돼 내려왔다. 성인 연구의 권위자인 애드워터가 7백50명의 성인을
해설한 을 보면, 이날 순교한 발렌타인과 사랑을 고백하는 습관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다만
이날에 동면에서 깨어난 새의 암수놈이 서로 짝짓는다는 속전이 이 성인의 축일과 야합되어 사랑의 날이 된
것이라 했다. 아무튼 미국에서는 이날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발렌타인 카드가 크리스마스 카드에 못지 않게
오간다 하니 화끈한 열기가 아닐 수 없다.

서양풍속의 도입에 관용스런 우리나라에서도 이 핑크빛 카드가 나돌고 있고, 백화점에서는 발렌타인 세일즈
까지 하고 있으니 대단한 풍속사대주의가 아닐 수 없다.

이 사랑의 날은 서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히말라야의 고산족들은 같은 수의 총각처녀들이 편을 갈라 동서쪽
나무에 올라가 숨는다. 어느 한 총각이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에 화창한 처녀가 짝지어지게끔 돼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노래 대신 공을 뜻있는 처녀에게 던진다. 받고 안받고는 자유이지만, 만약 그 공을 받아들면
쌍이 이뤄진다. 사랑의 전달매체가 노래와 공으로 바뀌었을 뿐 발렌타인 카드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사랑의 날이 있었다.
'탑돌이'라 하여 보름달 밤에 사녀들이 밤새워 탑을 도는데 세번만 눈이 맞으면 결실이 되는 신나는 날이 있었다.
에서 김현이라는 사나이가 이 탑돌이에서 한 아가씨와 사랑을 맺고 있다. 세조 때는 지금 파고다공원인
원각사의 탑돌이가 너무 문란하다 하여 조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기까지 하다. 또 팔도의 굿패거리들이 다 모이는
개성 덕물산의 도당굿날에도 당간놀이를 하면서 눈이 맞으면 사랑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날, 총각 담 넘어가는 습속이 있어 처녀가 있는 집은 머슴에게 몽둥이 들여 월담을 지킨다
했으니, 칠석날도 한국의 발렌타인 데이가 아니었던가 싶다. 고대 폐쇠사회에서는 이처럼 특정한 날을 잡아 풍속으로
사랑을 보장해주지 않을 수 없었음직하다.








이규태 코너 (1984년 2월 14일 글)




연관 키워드
팔레스타인분쟁, 영화, 대통령, 미친, 6g, 주민등록증, 스컹크, 조선왕조의궤, 짜장면, 수표, 심장, άλασ, 밀레니얼세대, 개미와베짱이, 범어사, 포켓몬, 김대건신부님, 콜라, 페덱스, 쓰레기
Made By 호가계부